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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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을 씹어본다.
2015년 03월 30일 09시 48분  조회:581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유혹을 씹어본다.
 
   억조창생이 붐비는 지구촌 어디에나 인간의 리지력으로는 걱부하기 어려운 일종의 마력같은 힘이 군림하고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일컬어 유혹이라고 이름했다.
   유혹이 뭐냐? 추상적대상이면서도 구체적대상물이기도 하고 객체적인가 하면 자성(自性)적인것이기도 한 유혹에서 달랠 유(诱)는 말씀(言) 에 빼여날 수(秀)자가 그림 자처럼 붙어섰으니 충분한 흡인력을 갖고있는 미혹할 혹(惑)은 혹(或)시나 하는 마음 (心)으로 되여있어 문자그대로 남을 흘려서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것, 나쁜 길로 꾀여 내는것이라 사전에서는 명료하게 해석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의 생성, 발전과 더불어 그렇게 락인된 명사일뿐이고 그 속성은인간이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되면서 벌써 인간정신과 리성에 선행되여있었다고 해야 하리라.
   그리고 바늘 가는데 실이 간다고 유혹에 상응하여 탐혹이라는 말도 있는데 쌍둥 이자매쯤 된다고 할가, 유혹은 타아에서 기인되고 탐혹은 자아에서 기원되지만….아무튼 오색잡다하기로 요지경같은 살의 소용돌이속에서는 그렇게 가볍게 풀이되거나 소위 싹 비워둔 마음으로 림할수 있는것은 아닌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청 만물의 령장이라 하지만 온갖 유혹앞에서는 가모목에 놓아둔 엿가락처럼 마음이 흐물흐물해지고 삭신은 연골증에 걸린 아이처럼 되여 자칫 넘어지고 엎어져 코빼기를 벗기기 일쑤이고 심하면 천길나락에도 굴러떨어지기 십상이니 헤겔씨가 고집하던 절대리념보다 어어마어마한것이 아니랴.
   그런데 주지하다싶이 유혹일반이 다 나쁜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인간생명을 선도하는 그 방향, 결과로 본다면 유혹에도 선악의 구별, 추하고 고운것의 계선, 고매하고 저렬한것의 차이가 있다.
   유혹이 구체적인 대상물에서 기인될 때 류류별별에 각양 각색이 되겠지만 크게 나누면 황금(돈)의 유혹과 미색에서 오는 유혹이 우두머리격이고 제일 난당(难当)이라 하겠다. 하긴 권력의 보좌가 주는 유혹도 엄청난것이지만도 돈이 있으면 권력 따위는 팔고살수 있는것이고 권력 한자락 잡으면 돈나무에 올라앉는 격이라 오동이 무성하면 봉황이 절로 깃든다고 미녀도 명주바지에 도꼬마리처럼 들어붙을것이니 그게 다 그안 에 있는것들이 아니겠느냐?
   인류의 모체인 대자연이 주는 유혹을 보자, 광막한 별세계은 우주인이라도 있을 듯싶으니 우주탐험가의 유혹이 될것이요, 천하제일 험봉은 등산가의 유혹이 될것이요, 미지의 바다밑세계는 해양학자의 유혹이 될것이다.
   자유로이 창공을 날으는 수리개의 그 멋진 날개짓은 미국 라이트형제의 유혹이였을것이고 번개불의 그 강렬한 빛은 로모노쏘브의 생명을 앗아간 유혹이였을것이며 골드바흐의 추측의 탄생은 진경윤으로 하여금 진씨정리를 낳을수 있게 하였던 유혹이였을것이다. 상술한 그 모든 유혹들은 선지선각자들이 스스스로 당한 유혹으로서 인류의 물질문확재의 창조를 위해 선도자의 길에 오르게 한 세기적전환의 유혹들이다.
   동물세계에도 약육강식의 근원이 되는 유혹이 있을것이다. 닭우리속의 씨암탉은 여우, 삵괭이들의 유혹이고 개구리는 굶은 늘메기의 유혹이고…우등불은 부나비의 비 극적정사를 낳는 유혹이요, 백화는 탐화봉접(探花蜂蝶)의 유혹이다.
   세속의 유혹은도 얼마나 막무가내한가.《금준미주》는 공짜배기 취한의 유혹이 될것이고《옥반가효》는 쏘바께위치 같은 탐식가의 유혹이 될것이며 큰 권력은 벼슬에 불만족한 용속자의 유혹일것이다. 또 뭐니뭐니 해도 번쩍거리는 금덩이, 빨깍거리는 지페는 어섯눈을 뜬 애숭이로부터 백발로옹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의 불가항력의 유혹이 아닐수 없다.
   그러니 정신이 멀쩡하고 오장륙부가 구전한 사람치고 유혹일반과 등지고는 살수 없는게 틀림없다. 유혹을 도피하거나 거절한다는것은 생활을 도피하고 거절하는것과 같고 삶 그자체를 포기하는것과 같은 짓이라 할것이다. 그래서 어느 선배님은 인생의 행복과 성공의 절반은 유혹을 접수하는데 있고 절반은 유혹을 거절하는데 있다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유혹에 대한 접수자세, 명지한 선택은 생명의 완미함과 불미함, 흥망성쇠와 관련된 인생철학에서 대난제가 되는것이다.
   만나고 헤여지고 배우고 잊어버리는 환득환실의 인생길에서 유혹은 인간을 지치도록 피곤하게 만들며 까불어왔다. 그래도 우리는 어쩔수 없이 웃으면서 매달리고 울면서 나떨어지기도 했다. 더구나 물질생활이 점점 풍요로와지는 현시대에서 유혹과 리성, 방종과 절제의 대결은 현대인의 참혹한《인생전쟁》이 되였다. 한번 실수가 천고의 한이 된다는 도리는 다 알지만 그 누구도 자기가 유혹에 맞다들지 않는다고, 유혹에 가슴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없다. 유혹앞에서 욕망이 꼼지락거리고 피가 끓는것이 오히려 정상인의 마음가짐이며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가!
   문제는 그 유혹의 결과가 어떠냐에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마음이 약하지만 천고의 미담을 엮어놓은 현인들도 적지는 않다. 이런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명나라 만력년간에 산동 태화에 조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치안을 관리하고 도적을 나포해들이는 전(典史)였다. 어느 여름날 조정은 타현에 가서 녀도적을 잡았는데 인물이 천하절색이였다. 조정이 녀도적을 압송해가지고 본현 관아로 돌아오다가 날은 저물고 주막은 먼지라 산간의 빈 절에서 밤을 묵게 되였다.
   무인산중이요, 야밤인지라 조정은 녀도적의 포승을 풀고 편히 쉬게 하였다. 그런데 밤중에 미녀도적이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조정을 유혹해왔다. 조정은 악연했지만 그래도 젊은가슴에서 일만잔나비가 뛰놀았고 피가 설설 끓어올랐다. 녀자가 스스 로 원해오니 육욕의 향연을 마은껏 베풀고 인정도 봐줄겸 녀자를 놓아준들 시비를 걸어올 사람도 없을것이였다.
  그러나 조정은 마침내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지필을 꺼내여《조정은 절대 방종할수 없노라.》하고 큼직하게 써서 벽에 붙였다. 한참후 뜯어내여 불사르고 다시 써서 붙인후 열심히《념불》하였다. 그러기를 여나문번이나 거듭하고나니 날이 밝았다. 나라의 집법관으로서 자기 직분을 지키고 명분이 바르게 처사한 명관이긴 하지만 그렇게 우직한 방법으로 미녀의 유혹을 물리쳤으니 조정이야말로 딱쇠라 할가? 예로부터 영웅호색이라 했건만 조정이야말로 꿈속에서도 자기를 다스릴만한 대장부가 아닌가?
   옛날에도 이런 무탕무욕(无荡无欲)하고 일심종사하는 청렴관리가 꽤나 있었는가부다. 헌데 물욕이 횡행하고 돈이 인성을 타래떡모양으로 비트어놓는 현시대에 청백한 관리를 따라 배울이가 몇몇이나 될는지?
   석류치마아래 다투어 무릎을 꿇고 공방형(孔方兄)앞에서 소인으로 전락되여버린 개국공신도 있었을라니 기타 녹녹한 무리들이야 더 이를데 있으랴.
   이렇듯 사악한 유혹에 포로되여 질탕거릴 때는 내노라 하다가도 마침내 흥진비래 (兴尽飞来)라 쇠고랑을 차고 옥살이하는자, 불콩알맛이 따끔한지 고소한지 기억할 새 도 없이 저승사자에게 덜미를 잡혀 가는자들이 비일비재이니《선재, 선재로다.》인생비극을 빚어내는 위험천만한 유혹이로다.
   저마다 제멋의 인생을 사는 마당에 감놔라 배놔라 할수는 없지만 살찌는 돼지는 운이 나쁘다는 외국격언이 자꾸 떠올려진다. 아무렇게나 놓아둔 쌀주머니속에 덫이 있는줄은 모르고 탐닉만 하려든다면 필경은《재판받은 쥐》에 나오는 장끼처럼 붉은콩 한알의 유혹에 목숨까지 빼앗길수밖에 없으리라.
  오, 누가 알랴. 인생행로란 기괴하고 변덕스러운것이거늘 사람의 흥망성쇠란 사소한 유혹에서 갈라질줄을.
 
                               1999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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